키우던 미꾸라지가 죽어서 슬퍼하는 민효를 보고 은수는 위로를 하지만 오히려 민효의 화를 돋운다. 그리고 다림질을 하다 실수로 바지를 태운 엄마에게도 은수는 제대로 된 위로를 하지 못한다. 다음 날 육상 대회에 나갈 반대표를 뽑는데, 민효가 선생님 말씀을 잘못 알아들어 반대표가 되지 못해 속상해하자 은수는 민효에게 선생님이 규칙 설명할 때 잘못 알아들은 걸 이제 와서 어쩌겠냐고 말한다. 순간 민효는 그동안 은수에게 쌓인 감정이 폭발한다. 민효 때문에 기분이 엉망이 된 은수는 수학 학원에 가서야 마음이 풀린다. 쉬는 시간에 시험을 못 본 다희가 풀 죽은 소리로 투정을 하자 은수는 시험 점수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둥, 시험을 봐야 자기 실력을 알고 부족한 걸 보충할 수 있다고 선생님이 그랬다는 둥 위로를 하지만 오히려 다희의 화를 돋운다. 그러던 주말 오후, 민효는 다른 친구들과 ‘미술관 견학 보고서’ 숙제를 하고, 이것을 본 은수는 짜증을 부리다가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운다. 은수는 아무 말 없이 가만 안아 주기만 하는 엄마를 보고 생각에 빠진다. 월요일 아침, 은수는 민효 책상 서랍에 사과의 편지를 넣고, 둘은 다시 단짝이 된다. 이후 은수는 민효와 점점 사이가 좋아지는가 싶었는데, 며칠 후 또 문제가 생긴다.
“어쨌거나 네가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된 걸 이제 와서 어쩌겠어. 그리고…….”
은수는 무심히 말을 이었어요. 민효의 얼굴의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것도 모르고 말이죠.
“다시 뛴다고 해도 네가 경서를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네가 2등도 아니고 3등인데, 그럼 2등 한 영채도 이겨야 하고…….”
은수는 그 일은 그만 잊고 기분 풀라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넌 참 말을 해도…….”
민효가 불쑥 은수의 말허리를 자르는 바람에 마무리는 못 했지만 말이에요. 은수는 그제야 민효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알아차렸어요.
“내가 뭘?”
은수는 자기를 노려보는 민효의 눈초리에 어리둥절했어요.
“그러니까 네 말은, 3등 주제에 졌으면 깨끗이 인정하고 잔말 말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이거잖아?”
민효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은수가 하려던 말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내가 언제 그랬어? 난 그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은수가 억울한 마음에 변명하듯 말하는데, 민효가 또 말을 잘랐어요.
“넌 매번 그런 식인 게 문제야.”
민효가 비꼬듯이 말할 때는 은수도 속이 뒤틀렸어요.
“매번 그런 식이라니? 내가 뭘 어쨌는데?”
“친구라면서 너는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모르냐? 어제는 우리 라지한테 그 정도면 오래 산 거 아니냐고 하더니, 오늘은 또 뭐? 내가 선생님 말씀 잘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된 거 누가 모른대? 그러니까 더 속상해서 이러는 거잖아. 근데 기껏 해 준다는 말이 3등이 뭐가 어쩌고 어째?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네가 이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너랑 절교하고 싶은 줄 알아? 나, 먼저 갈게.”
민효는 날 선 말들을 따발총처럼 두두두두 쏘아 대곤 앞서 뛰어갔어요. 그 뒷모습을 보며 은수는 기가 막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 본문 19~20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