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림이는 아기 때부터 뭐든지 잘했던 아이이다. 나림이는 걸음마도 빨랐고, 옹알이도 빨랐고, 심지어 한글도 빨리 읽었다고 하니 가족들의 기대가 남다르다. 어릴 적에는 가족이 자기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에 나림이도 기뻤지만, 지금은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림이가 일곱 살 때, 피아노 콩쿠르에 나간 적이 있다. 연습할 때에 계속 실수했던 부분에서 또 다시 실수한 나림이는 콩쿠르를 망치고 만다. 박수만 받던 나림이가 인생 최초로 실패를 맛본 순간이다. 그 후 나림이는 자신이 없는 것은 아예 멀리하기로 다짐한다.
이번에 학교에서 배우는 엑스자 줄넘기도 잘할 자신이 없자 나림이는 발목을 다쳤다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친구들 앞에서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림이에게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방과 후 교실 역시, 엄마가 신청해 준 컴퓨터 교실은 잘할 자신이 없어 대신 이번에도 자신 있는 창의 미술을 선택한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공원에 간 날, 아빠는 나림이와 동생에게 두발자전거를 가르쳐 준다고 하지만 나림이는 두발자전거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 망설인다. 하지만 나림이의 동생은 자꾸자꾸 넘어지면서도 자전거를 열심히 배운다. 나림이가 동생을 보면서 저렇게 못하는 모습을 보이느니 안 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찰나, 나림이는 계속 넘어지는 동생을 보며 기뻐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본다. 나림이는 엄마에게 저렇게 자꾸 넘어지는 게 실망스럽지 않냐고 묻는데…….
드디어 문제의 1번 손가락 순서가 다가왔어요.
‘3번 말고 1번.’
아, 너무 1번에 집착했던 걸까요? 1번 손가락은 눈치도 없이 너무 빨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어요. 그리고 제멋대로 뒤엉킨 손가락처럼 내 머릿속도 마구 뒤엉켰어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다음 악보가 생각나지 않았어요. 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만.”
피아노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내 귀에 심사위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쥐구멍 대잔치의 하이라이트는 그렇게 이모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어요. 박수만 받던 내 인생 최초의 실패의 순간이었지요. 무대 위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던 칭찬스티커는 갈기갈기 찢어져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어요.
그 후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어요. 나는 당장 피아노 학원을 그만뒀어요. 보라색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색깔이 됐고요. 콩쿠르의 ‘콩’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해서 콩국수도 안 먹어요. 그리고 그 뼈아픈 실패를 통해 인생의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됐어요.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아예 처음부터 피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요.
- 본문 18~19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