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문제의 1번 손가락 순서가 다가왔어요.
‘3번 말고 1번.’
아, 너무 1번에 집착했던 걸까요? 1번 손가락은 눈치도 없이 너무 빨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어요. 그리고 제멋대로 뒤엉킨 손가락처럼 내 머릿속도 마구 뒤엉켰어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다음 악보가 생각나지 않았어요. 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만.”
피아노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내 귀에 심사위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쥐구멍 대잔치의 하이라이트는 그렇게 이모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어요. 박수만 받던 내 인생 최초의 실패의 순간이었지요. 무대 위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던 칭찬스티커는 갈기갈기 찢어져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어요.
그 후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어요. 나는 당장 피아노 학원을 그만뒀어요. 보라색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색깔이 됐고요. 콩쿠르의 ‘콩’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해서 콩국수도 안 먹어요. 그리고 그 뼈아픈 실패를 통해 인생의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됐어요.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아예 처음부터 피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요.
- 본문 18, 19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