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두메산골에 사는 삼식이네는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들에게 땅을 빼앗긴 뒤로 아버지마저 병들고, 어머니가 돈을 벌러 경성으로 떠난 지 반 년 만에 소식이 끊기자, 삼식이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형제와 친척들에게 부탁하고는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경성에 온 첫날부터 쌈짓돈과 어머니 주소가 적힌 편지를 털렸지만, 운 좋게도 엿장수 일을 하는 나물이란 아이를 만나 얹혀살게 되었다. 경성은 서양 사람도 많고, 축지차와 화륜거 등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한 게 마치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것 같은 곳이었다. 나물이를 따라 엿을 팔러 다니면서 어머니의 행방을 쫓던 중 삼식이는 나물이가 일본인들과 거래를 하는 듯 수상쩍은 모습을 보이자 불안하기만 하다. 나물이가 나쁜 사람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는 거라고 짐작한 삼식이는 고민 끝에 이 사실을 순사에게 신고하려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나물이의 아버지는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어머니는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고 있었고, 나물이도 가족과 나라를 구하겠다며 의열 단원들을 돕고 있었다. 나라를 찾아야 자기처럼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나물이가 가족을 만날 수 있고, 그래야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 자유가 생긴다는 생각이 들자 삼식이는 가슴 한쪽이 뜨거워진다. 그 뒤로 둘은 엿을 팔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어른들에게 정보를 전하는 역할을 함께 했다. 드디어 삼식이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어머니와 만났고, 나물이는 상해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나물이를 상해로 떠나보내던 날, 흰 연기를 뿜으며 멀어져 가는 화륜거를 바라보며 삼식이는 약속했다. 꼭 다시 만나자고!
‘경성에 닿기도 전에 돈을 다 써 버리면 어떡하지? 어머니를 못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아,
이제부턴 사흘에 한 끼만 먹어야 하나…….’
삼식이는 이런 고민을 하면서 간신히 노량진 나루터에 도착하게 되었다. 온몸을 잔뜩 웅크
리고 있던 삼식이는 자리에세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쭉 폈다. 뼈 마디마디에서 우두둑 소리
가 났다.
“아이고, 시원하다.”
그사이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삼식이도 덩달아 움직였다. 경성은 왠지 공기부
터가 달랐다. 특별하고, 달콤한 맛이 난달까?
‘이야, 저건 양식 건물들이잖아. 경성은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삼식이는 입을 쩍 벌리고서 높다란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모습도 특이했다. 강원
도 두메산골에서는 양장 한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경성은 오히려 한복 입은 사
람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짧은 머리에 구레나룻을 기르고 서양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게 보
였다. 여자들은 가르마를 내 양편으로 곱게 빗어 내린 단발머리를 하고 고무신이나 꽃신 대
신 언뜻 보면 나막신처럼 생긴 신발을 신고 휘청휘청 위태롭게 걸었다.
“이야, 여기는 죄다 도깨비들이 사는 동네 같네!”
그때 삼식이의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바로 경성에서는 눈 감으면 코 베어 간
다는 말이었다. 삼식이는 혹시라도 코를 베일까 봐 눈을 부릅뜨고 걸었다. 눈이 아파서 눈물
이 흐를 지경이었지만 감을 수가 없었다. 걷다가 코가 툭 떨어질까 겁나서 심장이 콩콩거렸
던 것이다.
두리번두리번! 온통 신기하고 재미있는 광경이 가득했다. 길가에서 알사탕이며 과자 따위를
파는 장사꾼들도 특별해 보였고, 인력거꾼이 손님을 태우고 달리는 모습도 신기했다.
“어머니 편지에 적힌 주소가 어디였더라…….”
삼식이가 편지를 찾으려고 봇짐을 뒤적이는데, 마침 누군가 지나가면서 삼식이와 툭 부딪치
고 말았다. 삼식이는 얼른 머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삼식이와 부딪친 건 비슷한 또래의 사내아이였다. 사내아이는 삼식이와 달리 짧은 머리에
이상한 갓을 눌러쓰고 있었다. 서양 사람들이 갓 대신 쓰는 물건 같았다. 삼식이가 넋 놓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사내아이가 손을 흔들더니 휙 사라졌다.
“경성 사람들은 친절하기도 하지!”
그런데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삼식이는 얼른 앞주머니에 넣어 둔 노잣돈을 만졌다.
“어, 없다!”
어머니의 편지도, 집에서 싸 온 육포와 곶감도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삼식이는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새파래진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봇짐을 뒤적
거렸다. 그때 인력거꾼이 “비켜!” 하고 소리쳤다.
- 본문 25~30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