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주인이 이민을 가는 바람에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된 개 광칠이.
그런데 아들 현빈이 때문에 반 강제로 광칠이를 떠맡은 엄마 정순 씨도, 처음엔 잘 놀아 주더니 사는 게 팍팍해 광칠이에게 관심을 못 기울이는 아빠 홍구 씨도, 광칠이를 귀여워하면서도 제대로 돌볼 줄 모르는 현빈이도 딱히 좋은 주인은 아니었다.
운동 좋아하는 광칠이가 산책을 나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고, 종일 집에 혼자 남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 보내는 게 전부였다.
또 먹는 걸 좋아하는 가족들과 지내다 보니 광칠이도 어느새 뚱보 개가 되어 있었다.
광칠이는 살을 빼기로 결심했다.
단지 살 빼는 게 목표가 아니고, 옛 주인과 함께 꿈꾸던 개 마라톤 대회를 떠올리며 다시 꿈을 키웠다.
물론 광칠이 혼자 운동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각자 나름의 고충 때문에 광칠이의 고민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광칠이가 개집에서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살이 찌고 우울증에 시달려 스스로 꼬리를 깨물며 지낸 걸 알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비로소 광칠이에게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참 다행히도 광칠이를 돌보는 사이, 가족들 각자가 지니고 있던 걱정과 문제들을 조금씩 해결해 나간다.
광칠이도, 가족들도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바람을 가르는 개 마라토너 광칠이, 출발!
“광칠아, 미안해. 너 산책시켜 줘야 하는데……. 지금은 한 발짝도 움직이고 싶지 않아. 멀리 가지 말고 이 근처에만 있어야 돼.”
목줄이 풀리자 갇혀 있던 상자에서 풀려나온 새처럼 자유로웠다. 나는 의자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붉은 자전거도로를 따라 뛰었다.
그때 빨간색 운동복을 입은 젊은 남자와 회색 개가 내 앞쪽으로 달려왔다. 젊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자 회색 개도 잠시 멈추어 섰다. 회색 개의 견종은 살루키였다.
살루키 조상은 중동에서 사막을 달리던 사냥개였는데, 다리가 길고 늘씬해서 달리기를 가장 잘하는 개로 꼽혔다. 그런데 회색 개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나는 회색 개 앞으로 다가갔다. 살루키의 얼굴은 삼각형이었는데 턱은 단단하고 짧은 털에서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또 유난히 양쪽 귀가 길고 우아해 보였다.
컹컹!
회색 개가 나를 향해 짖으며 알은척을 했다.
“야, 알렉산더!”
나는 깜짝 놀랐다. 낯설지 않은 그 이름!
“알렉산더! 나야, 토리.”
“토리?”
난 이 멋진 개를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토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야, 우리 작년 개 마라톤 대회에서 만났잖아.”
그제야 아슴아슴 기억이 떠올랐다.
‘아하, 그래. 옛 주인이 아마추어 마라토너였지. 어느 날, 개 마라톤 대회에 나가자며 아침저녁으로 한강 둔치를 달리게 했어. 그래, 나 개 마라톤 대회에 나갔었지!’
내 심장이 파닥파닥 뛰었다.
‘맞아, 내 원래 이름이 알렉산더였어!’
알렉산더라고 불리던 때, 내 다리와 가슴에는 근육이 울근불근 튀어나와 있었다. 사람들도 나를 보면 멋지다며 환호했다.
(중략)
토리가 날 이리저리 쳐다보며 고래를 갸웃했다.
“그런데 알렉산더, 네 골이 그게 뭐야?”
“내 꼴이 뭐 어때서?”
“네가 지금 몇 살이지?”
“인간 나이로 계산하면 열일곱이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토리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맙소사! 대체 너한테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작년에 봤을 때는 열일곱처럼 팔팔했는데……, 지금은 아흔 살 늙은 개로 보여.”
‘뭐, 아흔 살?’
난 충격을 받아 온몸이 모래처럼 부스러지는 것 같았다.
- 본문 23~28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