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개 신세인 내가 은우를 만난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
어렵게 은우의 가족이 되었지만 용감하고 정 많은 은우 덕분에 나는 새로운 행복에 젖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은우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부신백질이영양증이라는 희소 난치병을 앓게 된 것이다.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병인데, 특정 지방산이 분해되지 못해 뇌세포를 죽게 만들고, 식물인간처럼 지내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었다.
나는 은우를 지켜 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은우에게 받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안타깝게도 은우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이대로 은우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부모님은 도서관과 연구소를 드나들며 각종 의학서적과 논문을 파고들었다.
노력 끝에 부모님이 발견한 오일은 병의 악화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은우는 환자 가운데 가장 오래, 서른 살까지 살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고, 은우가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곧 은우 곁으로 갈 것 같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너무 힘겨운 삶을 산 게 아니냐고.
그래도 난 행복했다.
은우와 주고받은 마음, 가족들과 함께한 특별한 세월 덕분에 외롭지 않고 따뜻했다.
은우야, 내 이름을 불러 줘!
그때 몽둥이를 든 몇몇 선생님과 경비 아저씨가 우르르 골목 안으로 쫓아 들어왔다. 어른들은 나와 아이를 번갈아 보며 소리쳤다.
“은우야, 괜찮니?”
“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더러운 털 좀 봐. 아무래도 병에 걸린 것 같아.”
“은우야, 어서 이쪽으로 오렴. 저런 무서운 개는 두 번 다시 얼씬 못 하도록 혼을 내 줘야 해.”
어른들은 마치 내가 병균 덩어리라도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내가 씻지 못한 지 꽤 되긴 했지만, 그래도 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꽃집의 향기 나는 개였는데……. 억울한 마음이 가득 밀려왔다.
내가 소시지에 한눈팔고 있을 때, 선생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몽둥이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왔다. 나는 잽싸게 몸을 비틀어 그 남자를 향해 짖었다. 놀란 남자는 내게 몽둥이를 휘두르려고 했다.
“안 돼요!”
은우라는 아이가 나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몸으로 나를 감쌌다.
“선생님, 얘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예요.”
“뭐? 너희 집 개였어?”
나도 내 귀를 의심했다.
“더러운 개도 아니고, 무서운 개도 아니에요. 보세요, 제 앞에선 고분고분 착하잖아요.”
“은우야, 거짓말하면 못쓴다.”
“정말이라니까요.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서 확인해 보세요. 얘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 ‘스누피’예요.”
‘뭐, 뭐라고? 내 이름은 레미야…….’
나는 속으로 외쳤다.
- 본문 21~22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