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별거를 하는 바람에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진 안이는 무심코 허풍을 떨었다가 친구들이 곧잘 믿어 주자 자꾸 거짓말을 합니다. 어느 날 안이는 느티나무 근처 늪에서 손톱만큼 작은 용을 만나고, 꼬마 용은 아이들이 자기 존재를 믿게 도와주면 안이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용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있으면 몸집이 커져 하늘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선생님과 친구들은 용의 존재를 믿지 않았고 안이를 이상한 아이로 취급합니다.
안이는 몹시 실망했지만 안이 말고 누군가 믿는 사람이 있었는지 용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뒤 학교에서 놀이동산으로 소풍을 갔을 때 드디어 용이 존재를 드러냈고, 수많은 아이들이 감탄을 터뜨리자 용은 엄청난 속도로 커지며 하늘로 올라갑니다.
꿈같은 일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안이는 진심을 믿어 준 친구에게 그동안 거짓말한 것을 뉘우칩니다.
집으로 가는 길, 안이가 용이 알려 준 대로 소원을 열 번 되뇌는 순간, 뒤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립니다.
엄마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안이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지요.
운전석 유리창으로 미소 짓는 아빠 얼굴이 보입니다.
“그런 게 어딨어?” 수정이가 입을 삐죽였어. “흥, 못 믿겠으면 말고.” 안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어. “아냐, 난 믿어. 더 얘기해 줘.” 지유가 안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어. “그럼 옆집에는 전진현이, 아랫집에는 김수헌이 살았단 말야? 그리고 또 있어? 또 누가 살았어?” “윗집에는 가수 골드보이가…….” “꺅! 골드보이! 나, 골드보이 진짜 좋아하는데. 완전 팬이야!” 지유는 손뼉을 치면서 발을 굴렀어. “말도 안 돼. 거긴 무슨 연예인들만 사냐.” 수정이가 팔짱을 낀 채 또 입을 삐죽거렸어. 어느새 마을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 근처까지 왔어. 바람이 휭 불자 느티나무 잎사귀들이 출렁 흔들렸어. 그때 수정이가 목소리를 낮추며 안이에게 말했어. “너, 혹시 우리 마을에 지하 100층만큼 깊은 늪이 있는 거 알아?” “말도 안 돼.” 안이의 눈이 동그래졌어. 그러자 수정이가 대뜸 따지고 들었어. “왜 말이 안 돼? 도시에 있는 너희 집도 100층이었다면서?” 지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저…… 저어기, 느……티나무…… 늪 말하는 거지?” “조심해. 늪 가까이에는 절대 가지 마. 늪 안에 빠져 죽은 시체가 한가득 쌓여 있을지도 몰라.” 수정이가 손가락으로 느티나무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어. 느티나무 뒤로는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길이 보였어. “저기, 저 길로 가다가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거기에 늪이…….” 그때였어.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휘익 지나갔어. 아이들은 “꺅!”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갔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편 까마귀 한 마리가 아이들 머리 위를 스치듯 날아갔어. 두 아이 뒤를 따라가던 안이는 갑자기 숨이 턱 막혔어. 안이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쳤어. “같이 가!” 두 아이는 안이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뛰어갔어.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더니 곧 사라졌지. 혼자 남은 안이는 중얼거렸어. “뭐야, 지하 100층만큼 깊은 늪? 말도 안 돼. 지상 100층 건물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흥!” 안이는 콧방귀를 뀌면서 길을 걸었어. 안이의 반짝이는 까만 구두 위에 흙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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