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특별 숙제인 ‘가훈 발표’를 앞두고 다은이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매일 한 사람씩 발표를 하는 중이고 다은이 차례는 멀었습니다. 하지만 규원이가 이순신 장군의 후손을 들먹이며 가보 이야기까지 꺼내는 바람에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데다 발표를 어떻게 할지는커녕 부모님은 가훈이 뭔지 정해 주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무심한 듯하던 소담이도 엄마를 대동해 발표를 엄청 잘하고 선생님께 ‘초밥 지우개 세트’를 선물로 받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급기야 선생님이 준비한 선물, ‘초밥 지우개 세트’가 딱 한 개 남은 사실을 알자 마음이 급해진 다은이는 할머니 칠순 잔치 때 할머니 댁에서 가보를 발견하리라 마음을 먹습니다. 아빠가 급히 정해 준 가훈이 엄청 평범했기 때문에 멋진 가보라도 있어야 칭찬과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할미가 뭘 도와줄까?”
“음, 그게요…….”
다은이는 규원이, 소담이 집에 있는 두꺼운 책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오래된 책인데요, 사람 이름이 많이 적혀 있고, 이만큼 두껍대요.”
할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쳤어요.
“이거 맞나?”
다음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어요. 커다랗게 ‘전화번호부’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방다은! 내가 수상하다 했어.”
엄마 목소리에 다은이와 할머니는 화들짝 놀랐어요. 엄마는 할머니가 든 전화번호부를 보고는 피식 웃었죠.
“방다은, 너 족보 찾고 있었지?”
다은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어요.
“세상에, 저게 언제 적 거야? 30년도 넘었겠다. 봤지? 여기는 전부 저런 거야. 네가 찾는 거 없어. 그러니까 얼른 가서 자자, 응?”
다은이는 할머니 뒤로 숨었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쫓아냈지요. 할머니가 있어서 정말 든든했어요.
“족보 찾고 있었나? 그건 없는데.”
“아니에요. 엄마가 잘못 안 거예요.”
다은이는 소담이네 백자와 꼭 닮은 도자기를 찾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도자기는 보이지 않았지요. 결국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도자기? 그런 거 없는데. 할미 집에서 본 거 맞나?”
“네! 제가 옛날에 손 넣고 막 장난쳤는데…….”
“아, 그거! 있다, 있다!”
할머니는 의자를 딛고 올라가 수납장 위에서 박스를 꺼냈어요. 꽁꽁 묶어 놓은 분홍 보자기 속에서 도자기가 나왔어요.
“우아!”
소담이네 백자와 아주 비슷했어요. 아니, 훨씬 근사했죠. 소담이네 백자는 그냥 하얗기만 한데, 이 도자기는 꽃과 나비가 그려져 있었거든요.
“할머니, 이거 제가 가져도 돼요?”
“너 이게 뭔 줄 아나?”
다은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어요.
“이게 필요하단 말이지. 알았다. 뚜껑도 어디 있을 건데…….”
다은이는 기뻐서 할머니를 껴안았어요. 그림도 있고 뚜껑도 있으니 소담이네 것보다 훨씬 좋은 게 분명해요. 할머니는 도자기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았어요. 그러고는 분홍 도자기에 싸서 현관문 옆에 놓았지요.
“할머니,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