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수와 주호는 등굣길에 오백 원을 주운 뒤 낯선 뽑기 기계를 발견합니다. 기계 위엔 ‘절대 뒤집히지 않는 전설의 딱지! 딱지를 뽑는 자, 딱지 신이 되리라!’고 써 있었지요. 그런데 정말로 전설의 딱지를 뽑았고 어찌어찌 주호 것이 되었습니다. 수업 내내 딱지 생각뿐이던 명수는 주호에게 딱지 대결을 신청, 죄다 따는 듯싶더니 주호가 전설의 딱지로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딱지를 몽땅 잃고 심통이 난 명수는 몰래 지우개로 숙제를 지워 주호가 야단맞게 하고, 우유갑을 터뜨려 주호 옷과 공책을 엉망으로 만들고, 급기야 엉겨 붙어 싸움까지 하고 맙니다. 다음 날, 주호가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싸우긴 했어도 걱정이 된 명수는 주호 안부를 묻는데, 선생님도 친구들도 주호를 모르는 사람 취급합니다. 그 뒤로 명수가 주호에게 쳤던 장난이 거울에 반사된 듯 명수에게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속상해서 화장실에서 울다 온 명수는 다들 체육 하러 나가고 텅 빈 교실에서 속삭이는 소릴 듣습니다. 소리가 난 곳은 선생님 책상 서랍 안, 거기에 딱지 인간으로 변한 주호가 있었습니다! 주호랑 싸울 때 ‘그렇게 딱지가 좋으면 딱지나 돼 버리든가!’라고 외친 게 떠올라 마음 아파하고 있는데, 괴물로 변한 전설의 딱지가 다가와 명수를 딱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딱지 괴물이 명수와 주호 딱지 중 대결에서 이긴 쪽만 풀어 주겠다 엄포를 놓자, 명수가 반짝 아이디어를 냅니다. 주호 위에 몸을 살짝 포갠 뒤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죠. 둘로 포갠 인간 딱지가 엎치락뒤치락할 때마다 “심명수 승!”, “이주호 승!”을 번갈아 외치던 딱지 괴물은 판결을 할 수 없어 몹시 화를 냈고, 명수는 심호흡을 한 뒤 돌려차기 공격으로 딱지 괴물을 벽으로 뻥 차 버립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딱지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오백 원짜리 동전이 똑 떨어집니다. 원래 모습을 되찾은 두 사람, 명수가 주호에게 “우리 오백 원으로 사탕 사 먹을까?” 하고 묻습니다.
명수의 머릿속에는 어른 쉬는 시간이 되어 전설의 딱지를 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띠로리로 띠로리로리리. 드디어 수업 끝나는 종이 울렸어요. 명수가 앞에 앉은 주호 팔을
냉큼 잡아당겼어요.
“주호야, 빨리 딱지치기하자.”
“좋아. 가판이면 얼마든지!”
“야, 가판은 시시해. 진판 하자.”
가판은 가짜 판이에요. 딱지를 따먹어도 나중에 돌려줘야 해요. 진판이 진짜 판이에요. 명수
는 진판을 좋아해요. 명수는 자기 딱지를 바닥에 와르르 쏟았어요.
“전설의 딱지에 내 딱지 몽땅 걸게.”
명수는 자기 딱지를 다 줘도 전설의 딱지라면 아깝지 않을 것 같았어요.
주호가 히죽 웃으며 말했어요.
“네 딱지 따 봤자 별론데……. 네 딱지는 다 꼬질꼬질하잖아.”
명수의 딱지는 때가 타서 모두 꼬질꼬질했어요. 사인펜으로 ‘심종수 거’라고 낙서도 돼
있어요. 심종수는 명수의 형이에요. 형은 5학년이 되자 명수에게 딱지를 몽땅 물려줬어요. 명수
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요. 아이들 앞에서만 자랑했지요.
“야, 이래 봬도 이게 딱지 신이 쓰던 딱지라고! 종수 형이 딱지 신이었던 건 너도 알지?”
“맨날 형 것만 하지 말고, 너도 엄마한테 새 딱지 사 달라고 해.”
주호 말에 명수 얼굴이 구겨졌어요. 명수가 딱지를 사 달라고 아무리 졸라도 엄마는 돈
없어서 안 된다고 딱 잘랐어요. 그러면서 새 문제집은 잘도 사 왔지요.
주호의 새 딱지들은 투명한 가방 안에서 반짝반짝 빛났어요. 가장 빛나는 건 전설의 딱지
였고요.
“주호야, 너 내가 어떻게 딱지 신이 된 줄 알아?”
주호가 눈을 또록또록 뜨고 명수를 바라봤어요.
“그건 잃는 걸 겁내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도 딱지 신인 우리 형한테 얼마나 많은 딱지를 잃
었는 줄 알아? 딱지 신이 되려면 딱지 잃는 걸 겁내면 안 돼.”
“난 그냥 딱지 신 안 될래, 헤헤.”
주호가 헤벌쭉 웃었어요.
“아유, 진짜 말이 안 통한다, 안 통해! 야, 넌 전설의 딱지도 가졌잖아. ‘전설의 딱지를 뽑는 자, 딱지 신이 되리라!’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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