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후는 잔소리하는 여자 짝꿍이 싫어서 남자 짝꿍을 간절히 바랐는데, 개를 피하려다 늑대를 만난 꼴이 되었습니다. 새 짝 강기찬으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들이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일일이 간섭하며 선생님께 죄다 고해바치는 아이였거든요. 아이들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선생님마저 친구들 좀 그만 이르면 안 되겠냐고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그 뒤로 기찬이의 고자질은 사라졌지만, 대신 자기가 더 적극적으로 친구들 행동을 바로잡고 잘못에 대해 끝까지 사과를 받아 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후가 질서를 어기고 기찬이가 참견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기찬이가 잘 둘러댄 덕분에 선생님께 야단맞는 건 모면했지만 진후는 맘이 편치 않았지요. 자기가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게 미안하기도 했고, 기찬이가 집에 가서 딴소리를 해서 일이 커질까 봐 불안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연찮게 기찬이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진후는 기찬이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트에서 웬 할머니가 잘못을 하고도 오히려 자기에게 화내는 걸 보면서 진후는 기찬이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피구 시합을 하는데 진후가 던진 공이 기찬이를 정면으로 맞히며 경기가 끝납니다. 진후네 팀이 승리에 취해 있는 사이, 진후는 기찬이에게 다가가 사과를 했습니다. 일부러 아프게 한 건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어리둥절해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진후 얼굴에 엷은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야, 물어보지도 않고 남의 지우개를 쓰면 어떡해?”
강기찬이 인상을 쓰며 불퉁하게 말했어요. 진후와 짝이 된 뒤로 처음 던진 말이었지요. 진후는 자기 지우개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자 무심코 옆의 지우개를 갖다 썼다가 통박을 당한 거였어요.
“미안!”
진후는 심드렁하게 사과했어요.
“괜찮아. 다음부턴 꼭 물어보고 써. 빌려줄 테니까.”
강기찬이 타이르듯 말했어요. 강기찬은 늘 이런 식이었어요. 미안하다고 말하면 금방 괜찮다고 하면서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지요.
“야, 줄 좀 맞춰. 책상 줄이 삐뚤어졌잖아!”
“너는 왜 애국가 부르는데 립싱크만 해?”
“화분에 물을 한꺼번에 많이 주면 어떡해?”
“복도에서 뛰면 안 되는 거 몰라?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잖아.”
(중략)
그러던 어느 날, 진후도 강기찬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이 생겼어요.
“하나만 더 주라.”
진후가 그날의 급식 도우미인 강기찬의 귀에 대고 슬쩍 말했어요. 제아무리 강기찬이라도 짝이니까 부탁을 들어줄 줄 알았던 거예요.
“안 돼! 다 똑같이 네 조각씩이야.”
강기찬이 별안간 큰 소리를 내는 통에 아이들의 시선이 확 쏠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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